[한겨레] “필리핀 무인도 체험해보니 우리 섬들도 궁금해졌어요” 2016.01.13. 1989년 울산에서 평발로 태어난 아이는 어릴 때부터 곧잘 넘어지고 달리질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유리를 밟고 넘어지면서 크게 다쳐 오랜 병원 생활을 해야 했다. 왼쪽 무릎 성장판이 파괴되는 바람에 좌우 길이를 맞추고자 오른쪽까지 성장을 멈추게 하는 치료를 받았다.고교를 마칠 때까지 5㎞ 이상 걸어보지도 못했다.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취미를 붙인 소년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 2009년 3월 동국대 문예창작과 첫 수업 첫 과제로 소설 쓰기를 받고 소설 주인공만큼은 ‘잘 뛰고 잘 달리는 친구’로 써보기로 했다. 우연히 사막마라톤 장면을 봤다. ‘나도 죽기 전에 한번은 사막을 달려보고 싶다.’ 굳은 결심으로 재활치료부터 다시 시작한 청년은 체력과 정신력을 다지기 위해 해병대에 지원했다. 그렇게 3년 반을 준비한 끝에 2012년 사하라사막 250㎞를 6박7일 동안 달려냈다. 내친김에 고비, 아타카마, 남극까지 5번에 걸쳐 1250㎞를 달렸다. 23살, 세계 최연소 사막(극지)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4년전 최연소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 ‘평발’ ‘지체장애’ 이겨낸 ‘인생반전’/ 책으로 강연으로 블로그로 ‘공유’ 화제지난해 동생과 팔라완 해적섬 ‘탐험’/ 동행 요청 줄잇자 아예 탐험대 결성/ 올해는 매달 ‘우리나라 섬기행’ 시작 20대 초반에 이처럼 인생 반전을 이뤄낸 윤승철(28·사진)씨는 지금 무인도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카루스 무인도 탐험대’를 이끌고 필리핀 팔라완의 작은 무인도로 떠나기 전날인 지난 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그를 만났다.“무인도 탐험대도 우연히 시작하게 됐어요. 지난해 2월 휴가처럼 네 살 아래 동생 승환이와 필리핀 팔라완의 작은 무인도 해적섬에서 겪은 생존체험기를 블로그에 소개했더니, 뜻밖에 ‘나도 해보고 싶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어요. ‘정글의 법칙’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고 호기심은 생겼는데 선뜻 혼자서 도전해볼 기회가 없는 청년들이 많았던 거예요.” 사실 그는 애초 우리나라 서해안의 한 무인도를 찾아갔다. 그런데 해변에서 불을 피우자 지나던 어선들이 신고를 해서 해경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무인도였지만 소유주도 엄연히 있어 무단입도가 된 셈이었다. 무엇보다 자연조건이 맨몸으로 서바이벌을 체험하기엔 한계가 많았다. “구글 지도를 보고 적당한 시험 지역을 골랐어요. 한국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 야영해도 좋을 만큼 따뜻한 지역, 비상식량은 물론 물조차 없이 들어가서 불을 피우고, 열매를 따고, 물고기를 잡고, 움막과 뗏목도 만들어 볼 수 있는 자연조건을 갖춘 곳이어야 했어요.” 그렇게 찾아간 팔라완에서 무작정 무인도에 데려다달라는 이방인 젊은이들을 보고, 현지인들이 더 긴장을 하더란다. 섬 주인을 불러 허락을 받게 해주고, 실어다줄 배도 수배를 해주고, 만일의 비상사태 때 구조신호를 보낼 방법도 서로 약속했다. “처음 며칠은 정말 아무것도 못 먹어서 ‘이러다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만큼 야자열매라도 하나 따고 물고기 한마리라도 잡은 순간 희열감도 컸죠. 야자수 잎으로 움막을 짓고 대나무로 뗏목도 완성해서 조금 먼 바다까지 나가 보니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기고요. 물론 동생은 다시는 따라오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사막마라톤 성공 이후 그는 ‘젊은 호연지기의 상징’이 됐다. 지난 연말 ‘2015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았다. 2013 경상북도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험대장, 2014년 해양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 청년탐사대장, 2015년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 청년탐험대장 등등 이력도 화려하다. 쿠바~멕시코~페루~콜롬비아~볼리비아~칠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배낭여행은 물론이고 엄홍길 대장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도 했다. 그사이 스킨스쿠버(어드밴스트), 태권도(1단), 검도(1단), 한자능력자격검정(2급) 등 자격증과 봉사활동 ‘스펙’도 차곡차곡 쌓였다. 오는 2월 동국대 졸업생 대표로 표창을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예요. 남보다 먼저 해본 극한 체험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탐험대와 함께 실제로 해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것을 통해 느끼거나 깨달은 삶의 의미를 글로 써서 남기는 것도 의미있으니까요.” 실제로 그는 맨 처음 사막마라톤 도전 과정과 실제 달리면서 느낀 점 등을 담은 <달리는 청춘의 시>를 펴냈다. 2013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이 책 덕분에 그는 더 많은 기회와 인연을 만날 수 있었다.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보다>에서 쟁쟁한 명사들과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여행작가로 이름난 ‘손미나앤컴퍼니’에서 1년 남짓 일하기도 했다. 수많은 방송 인터뷰와 기업 초청 강연을 하며 자신을 알렸다. 한 그룹의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다. “맨 처음 사막마라톤 출전을 하려고 휴학까지 하고 준비를 했는데 정작 대회 출전비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북아프리카까지 항공료를 포함해 최소한 700만원의 경비를 마련하느라 온갖 궁리를 했어요. 특히 소셜펀딩을 하느라 ‘6단계 리워드’ 아이디어를 짜냈는데, 그 때문에 이야깃거리를 많이 건졌어요. 책이 풍부해졌고요.” 그는 올해 ‘무인도 탐험대 생존기’와 ‘탐험여행 가이드북’도 출간할 예정이다. 올해 그는 또 한가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여행전문가 강기태씨와 함께 청년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섬기행’을 하는 것이다. 이달 말 1차 30명을 꾸려 전남 진도의 관매도를 답사한다. ‘섬기행의 개척자’인 강제윤 시인이 자문을 맡았다. 원문보기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