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ESC-무인도에 미치다17.08.31 요즘 힙한 여행지 무인도 전문 윤승철 인터뷰 “무인도는 자신의 끝과 마주하는 곳” 식수·알약·비상 식량 등 철저한 준비는 필수 3주간의 무인도 체험기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자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무인도는 어떻게 가나요?’ ‘저도 가고 싶어요.’ ‘다음에 데려가주세요.’ 그로부터 몇 주 뒤 공항에 도착한 윤승철(28) 작가는 매우 놀랐다. 다음 일정을 에스엔에스에 공개할 때까지만 해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무려 1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날짜, 그 시간에 맞춰 표를 끊고 나타난 것이다. 그들과 한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생각했다. ‘아, 무인도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매달 무인도 원정을 떠나는 탐험대 ‘이카루스’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문예창작을 전공하며 시를 쓰던 한 청년은 어느새 국내외 무인도만 30여곳을 여행한, 무인도에 푹 빠져버린, 무인도 전문가가 돼 있었다.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의 저자이자 무인도·섬 테마연구소장이기도 한 윤승철 작가를 지난 25일, 서울 합정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겉보기에 그는 온화한 표정, 조용한 말투, 시인의 눈빛을 지닌 사람이었으나 말문이 터지자 빛나는 유머 감각의 소유자였다. -무인도가 ‘힙한’ 여행지로 뜨고 있어요. 매력은 뭔가요?“ 혼자일 수 있다는 거예요. 완벽하게 혼자 있다 보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의 끝을 볼 수 있어요. 일이나 인간관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죠. 무인도는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는 곳이잖아요. 아무도 뭔가를 해주지 않으니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해요. 오로지 스스로 24시간을 설계하고 분배한다는 느낌,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좋아요.” 처음에 그가 갔던 섬은 이름조차 없었다. 그저 어부의 추천을 믿고 따라갔을 뿐인데, 덜컥 내리고 보니 바위와 자갈만 있는 곳이었다. 황량한 자갈밭에서 옹색하게 군불을 쬐고 있는 윤 작가의 사진을 보는 순간, 기어이 웃음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제가 생각했던 낭만적인 무인도가 아니었어요. 원래는 5일 뒤에 어부 아저씨가 데리러 오기로 하셨는데, 하룻밤 만에 해경 배에 실려 나오게 됐죠. 왜냐고요? 제가 피운 불빛을 보고 인근 섬의 주민들이 신고를 했어요. 간첩인지 산불인지 모르겠다면서요.” 해양수산부 집계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무인도는 대략 2876개다. 그는 애정을 담아 말한다. “너무 예쁜 무인도들이 많아요.” -외롭거나 고독한 순간도 많을 텐데, 평생을 무인도에서 살라면? “못 살죠.(웃음) 무인도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도시로 오고 싶어져요. 맛있는 것도 먹고, 사람들도 보고 싶어져요. 하지만 돌아가면 다시 무인도로 가고 싶어집니다. 외로움이나 고독을 느끼지 않아서 무인도를 찾는 게 아니에요. 혼자 있는 기쁨을 즐기는 단계가 지나고 나면 외로움과 고독이 몰려와요. 생각을 정리하는 건 몇 시간, 혹은 며칠이면 충분하거든요. ‘와, 한없이 외롭다. 와, 한없이 세상 혼자다. 세상이 종말하고 혼자 살아남으면 이런 느낌일까’라는 생각이 들죠.” -그땐 뭘 하면서 견뎠어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초등학교 친구들부터 한명 한명 떠올려요. 소중한 사람들한테 편지도 쓰고, 기억에 남는 일들을 모조리 떠올려봅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요. 너무 많이 남아요.(웃음) 그때부턴 멍하니 있는 거예요. 바다, 지나가는 새, 뜨고 지는 해 보면서요. 살면서 이렇게까지 원초적으로 있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멍하게 있어요.” 평화롭게 보인다고 해서 영화나 드라마 속 무인도를 상상하지는 마시라. 강과 호수가 있다거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정글이 있다거나, 바다에 들어가면 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다거나 하는 무인도는 그야말로 상상에나 있을 뿐 현실에는 없으니까. 윤 작가에 따르면 그런 게 갖춰진 섬에는 이미 사람들이 산다고 한다. 그토록 여건이 척박하다면 식수는? “냄비에 바닷물을 담아 끓이면서 뚜껑에 맺히는 수증기를 모으기도 하고, 식물의 잎사귀를 큰 비닐로 감싸 식물에서 방출되는 수분을 모으기도 하고, 자갈과 모래로 정수기를 만들어보기도 했죠.” -똑똑 떨어지는 커피 방울을 모아 만드는 더치커피도 아니고, 갈증이 해소되나요? “몇 방울이나 모으겠어요. 벌컥벌컥 마시는 일은 꿈도 못 꿨죠. 처음에는 코코넛을 따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야자나무가 생각보다 엄청 높은데 나무를 타본 적이 없잖아요. 목이 마르니까 절반까지는 올라갔어요. 하지만 그 이상은 무서워서 못 올라가겠더라고요. 목은 마르고. 바닷물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셨어요. ”그는 바닷물을 마시고 1시간 정도 지나니 혀가 따가울 정도로 목이 말랐다. 공포를 애써 이겨내며 나무에 오르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결국 코코넛 나무 꼭대기까지 올랐다. ‘아, 죽을 만큼 간절하니까 되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는 약간의 식수와 물에 녹이면 박테리아와 세균을 죽이는 알약, 빨대를 꽂으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생존 라이프 스트로’를 챙겨서 떠난다. 간장과 초장, 고추냉이도 준비물에 포함된다. 소라나 조개를 찍어 먹는 용도다. 물론 낚시와 채집이 허용되는 무인도는 대개 외국에 있게 마련이다. 고기를 잡는 법, 잡은 고기를 말리고 보관하고 조리하는 법, 덫을 놓는 법 같은 생존 팁들도 필리핀의 무인도를 지키던 섬지기들로부터 배웠다. 무인도에 가장 오래 머문 기간은 3주지만, 대체로 탐험대와 함께 가면 3박4일, 혼자 가면 5일~1주일 정도를 머문다. -직접 조달한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뭐예요? “미크로네시아에서 먹었던 코코넛 크랩이에요. 팔라완에서 잡았던 ‘삐톋’이라는 갑각류도 맛있었고, 낚시로 건져 올렸던 새끼 참치도 기억납니다. 솔직히 말하면 비상식량으로 들고 간 라면이 젤 맛있었어요.”(웃음) -외국과는 달리 한국은 어업권 문제가 있어 식량을 가져가야 되죠? “맞아요. 채취나 사냥을 함부로 하면 어촌계나 지역 주민들께 해를 끼칠 수 있으니 식량은 싸 가는 게 좋아요. 국내 무인도 여행은 캠핑에 가까운데, 섬의 소유주가 개인인지 지자체인지 해상국립공원인지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져요. 섬이 국립공원이면 숙박을 못 할 수도 있어요. 사유지도 동의를 구하지 않으면 불법침입이 될 수 있고요.” -국내 무인도 중에 안전하고 검증된 곳을 추천해주신다면? “사승봉도예요. 조금 덜 알려진 곳으로 가고 싶다면, 인천 쪽의 상공경도나 하공경도, 선갑도에 가면 좋을 거예요. 상공경도는 텅스텐 광산이 있었던 곳이라 어두컴컴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동굴이 있어요. 저도 무서워서 끝까지 가보지는 못했고요.(웃음) 완도의 지초도는 바다색이 예뻐요. 에메랄드 빛깔이에요. 통영 쪽 가왕도는 예전에는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라 그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어요. 묘지나 우물도 있고, 미역을 끌어올렸던 모터도 있고, 해지고 다 쓰러진 집들도 있고요.” -무인도까지 가는 배편은 없으니 배를 빌려야겠네요? “주로 어선을 빌려서 타고 가고요. 외국에서는 배를 섬에 정박하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약속 날짜에 맞춰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만약 인천에서부터 상공경도나 하공경도까지 배를 빌려 간다면 뱃삯만 60만~70만원은 나올 거예요. 그러니 일단은 인천에서 정기선을 타고 자월도, 덕적도, 승봉도, 대이작도 같은 섬까지 간 뒤 거기서 배를 빌려 상공경도·하공경도까지 가세요. 통영의 가왕도도, 완도의 지초도도 마찬가지예요.” 윤승철 작가는 또다시 새로운 무인도를 발굴하러 인도네시아로 올해 11월 말에 떠난다. 그 전까지는 ‘숲 해설가’ 자격을 취득할 계획이다. “교육과 실습은 마쳤고, 남은 건 이론 및 실기 평가예요. 섬을 다니다 보니 지리학뿐 아니라 나무와 풀, 꽃, 야생동물, 식생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어요.” 원문보기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