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동산] 낯선 곳으로의 여행 (16년 7월호) 무인도섬테마연구소장 윤승철 ᅠ사람이 많지 않는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ᅠ키르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이란의 황무지나 남극 같은 곳. 이번엔 무인도로 가보기로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이라도 그곳에서 적응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키르키스탄 대초원의 유목민이 그랬고 사막의 배두인족이 그랬습니다. 아마존의 원시 부족이나 이란의 황무지에 적응하며 몇 가구씩 마을을 지어 사는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남극은 또 어떻구요. 지구가 아닌 행성으로 보아도 무관한 남극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연구원들이 있었습니다. 살 수 없는 환경에도 적응하며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던 저는 무인도가 궁금했습니다. 얼마나 척박하면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일까요. ᅠ무인도는 무인도더군요. 우선, 고요와 적막이 세상 전체를 감쌉니다. 오직 세상과 나 둘밖에 없어 이 세계가 참으로 단순하게 보입니다. 내가 사는 이 땅이 이렇게도 조용한 곳임을 알게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제껏 만나지 못한 고독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 서울에서 이렇게 고요한 세계를 만났다면 분명 불안하고 초조했을 겁니다. 얼마간의 텀을 두고 규칙적으로 들리는 파도 소리도 스스로 다가오는 파도에 묻혀 버리고요, 가끔씩 울리는 섬 뒷편의 새의 울음 소리도 더 깊숙한 숲 속으로 들어가버립니다. 그 어떤 소리도 모래 해변 속으로 묻힐 것 같은 이곳. 그렇게 저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라지만 적막과 고독을 각각 한웅큼씩 들고 들어간 셈이지요. ᅠ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그곳에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무엇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것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무인도를 간다는 것은 이런 낯섬의 끝으로 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가는 여행지에 가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어서 잔뜩 긴장을 하고 몸에 힘을 주었습니다. 힘 닿는데까지 무인도의 구석구석을 누빌 요량으로요. 그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곳으로 가는 중입니다. 다녀온 사람도 없어 더욱이 상상에 의존해야만 하는 곳. 내가 가는 길이 곧 시작이자 길이 되는 곳으로.ᅠ [왜 무인도입니까?] ᅠ제가 무인도에 간다고 했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무인도에 가냐는 질문.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다음 질문은 이랬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이야 방 안도 있고 깊은 산골도 있지 않냐고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무인도는 세상에서 버려진 곳인것 같아요. 그래서 그곳에서는 더 혼자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뭔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고 방황하는 섬은 저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바다에 묶여 둥둥 발만 구르는 모습이 측은하기도 합니다. 방 안에서 문을 걸어잠그더라도 산 속으로 들어가 혼자 있어도 휴대폰은 쉴새없이 울릴테고 그러면 이윽고 저는 다시 세상과 만날테지요. 온전히 혼자이지 않는 곳들이어서 찾다가 무인도에 가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폰이 울리지 않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으로, 또 무인도에 있었다는 한마디면 그토록 제 폰을 울리게 했던 사람들에게 완벽한 변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ᅠ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인도에 간다니. 그런 곳을 용캐도 알고 찾아가는 것이 신기하면서 나는 참 뭐랄까.ᅠ무인도에 가는 것은 우주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주와 마찬가지로 무인도는 존재는 익히 알고 있지만 영영 가지 못하는 세계라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무인도가 있는지도 몰랐고 그곳에 갈 생각은 더욱 더 못했는데 그것은 마치 우리가 우주에 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이렇게 무인도에 가는 방법이 있는줄 알았다면 나도 한 번 가보고 싶다며 운을 띄웠습니다. 우주로 여행을 가는 것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서 몇 몇 사람들이 실제로 우주여행을 꿈꾸는 것처럼 무인도로의 여행은 우주여행과 참으로 비슷하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습니다.ᅠ결국 지난달엔 이렇게 말했던 친구와 함께 무인도를 가기도 했습니다. ᅠ떠나고 싶은 곳으로 무인도를 선택한 것은 이상한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날이었습니다. 왜 무인도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이젠 당당히 대답할 거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실은 철저히 혼자이고 싶고 새롭고 낯선 곳의 끝이란 답 외에 준비한 대답들이 더 있습니다. 모노폴리, 우리나라 게임으론 부르마블 속 무인도처럼 살면서 세 턴 정도는 쉬고 싶었다는 대답도 있었습니다. 판의 여러 바퀴를 도는 것은 쳇바퀴처럼 도는 제 삶이기도 했고 열심히 건물을 올린 것은 그간 부단히 움직였던 제 모습 같기도 하여 무인도에 도착한 말처럼 좀 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편지를 쓰고 코르크마개를 닫은 후 유리병을 던져보고 싶었다는 것도 준비해둔 답변 중 하나였습니다. 모쪼록 이런 조금은 유치한 답변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확신한 날이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무인도에서 편지를 쓰고 유리병을 던졌는데요,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해변으로 떠내려오긴 했습니다.ᅠ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을 즐기는 법] ᅠ모든 것이 새로운 이곳은 목을 축일 물조차 없습니다. 먹을 것을 구하는 노력에 비하면 섭취하는 양은 터무니없이 작습니다. 대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는 것은 야자수 아래 그늘로 들어가는 것이 전부이고 시원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속이 편해지는 곳이었습니다. 해가 지는 순간 어둠이 덜컥 온 세상을 덮쳐 눈이 멀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은하수가 보이는 밤하늘과 떨어지는 별똥별이 무수히 많은 곳이긴 하지만 이미 도심의 불빛에 익숙해진 저의 눈을 밝히기엔 역부족입니다.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것은 이런 막막한 것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오래도록 잊고 있었긴 합니다만 이렇게 불쑥 모든 것이 한번에 다가올줄은 몰랐습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야하는 곳, 원시로 돌아가는 곳이기에 척박하기만 했던 혼자만의 시간이었습니다.ᅠᅠ하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완전한 저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친구들과 캠핑장에 가면 혼자 텐트를 치고 있는 아저씨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것도 일찍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늦은 시간 홀로 와서 조용히 텐트를 치는 아저씨를. 텐트를 친 뒤에는 의례 라면 하나를 끓인 후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가만히 별을 바라보는 아저씨들을 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분들이 항상 제가 항상 눈을 뜨고 났을 땐 사라지고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침 일찍 텐트를 걷고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죠. 저는 늘 이런 아저씨들이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무인도에와서야 그분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살짝만 벗어나 홀로 텐트를 치고 누우면 세상에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 생긴 느낌이 듭니다. 무인도에선 텐트가 될 수도, 제가 지은 집이 될 수도 있지만 모쪼록 한걸음 밖에서 저만의 세상을 짓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는 무엇을 하든 자유입니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온 저도 이따금씩 텐트를 짊어지고 캠핑장에 가곤 합니다.ᅠ ᅠ시계가 없는 이곳은 제가 생각한대로 시간이 흘러가 억압에서 해방되는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나뭇가지를 해변에 꽂아 두고 그림자의 각도로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그러다 한 번 비구름이 몰아친 뒤로 시간을 놓쳤는데요, 오히려 그 이후부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일일이 메모하고 잴 필요 없이 그저 뜨는 해와 달에 따라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됐습니다.ᅠ 시간뿐일까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몰라도 되는 곳입니다. 서울에서는 길을 찾기 위해 열심히 스마트폰의 화살표를 돌리고 눕혔다면 이곳은 그저 새벽녘 별의 흐름이나 구름의 방향 정도만 알면 되는 곳입니다. 걸어왔던 길에서 집을 지었던 곳까지 되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방향 감각만 있으면 되는 곳이니 이동하면서 딱히 많은 것들을 생각지 않아도 됩니다. 불을 피우고 피운 불이 새찬 비에도 꺼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 없고 쏜 작살에 물고기 한 마리라도 꽂히면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진 느낌입니다.ᅠ ᅠ컴퓨터의 리셋 버튼처럼 제 머릿 속도 이곳으로와 다시 시작하는 느낌도 받습니다. 못다한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 너무 많이 생각했던 것을 내다 버리는 시간입니다. 바빠서 충분히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침착하게 처음부터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가령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무엇을 할 때 가장 보람차고 기쁜지에 대한 생각부터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해변에는 힘차게 튀어 오르는 날치들과 동시에 죽어 떠내려온 조개 껍질들도 많이 보이거든요. 때문에 오히려 살면서 했던 많은 생각들이 보잘것 없이 느껴져 내려놓게 되는 곳입니다.ᅠ ᅠ일상적이지 않은 곳이기에 사두고 미처 읽지 못했던 책을 읽거나 좋은 음악이라고 받아 두었던 음악을 감상하기에 제격입니다. 왜 이런 것들은 늘 일상에서 벗어나면 생각이 나는 것일까요. 이번달에 무인도에 들어갔을 때 저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의 소설을, 이병률의 시집을 들고갔습니다. 신해철 노래가 담긴 오래된 카세트 테잎도 들고가 한 번 들어 보았습니다. 외딴 곳에서 느끼는 부재와 외로움을 이들의 힘으로 이겨내려 하나 봅니다. 글쎄요, 이런 마음이 무인도여서 그런지 아니면 지나치게 완벽히 혼자인 공간에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히 이런 낯선 곳에서는 문장 하나하나와 멜로디 한 음절 음절이 더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ᅠ ᅠ서울에 오면 무인도가 그립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요, 매달 저는 무인도를 갑니다. 이제는 한달에 한 번씩 무인도를 가야 마음이 한 결 놓입니다. 약도 많이 먹으면 내성이 생겨 나중엔 무감각해진다고 하는데 저도 무인도를 찾는 빈도가 자꾸 늘어나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무인도가 주는 매력을 아직 느꼈던대로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가 느꼈던 감정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이번 달에도 무인도행 짐을 싸는 중입니다.ᅠ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