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DOOR NEWS 네이버 캐스트] 무모함을 챙겨서 무인도로 뛰어들다 : 윤승철의 무인도 체류기 VOL.12015.07.01. 글 사진 / 윤승철 내 삶에 한번쯤은 무인도아웃도어 5월호를 준비하면서 처음 윤승철을 만났다. 아직 앳된 얼굴의 그였지만 또래보다 더 많고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얘기 나눌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그의 묘한 매력이 좋았다. 낯선 곳을 소망하고 힘든 것을 과감히 선택하는 청년 윤승철. 그가 무작정 떠났던 무인도 이야기를 연재해보려고 한다.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독자 여러분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편집자 주) 게임을 하다가 계획한 무인도행 친구들과 ‘부루마블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판이 돌만큼 돌고 각자 땅도 사둘만큼 사두니 자꾸 무인도가 눈에 들어왔다. 3회 정도 쉰다면 친구들 땅을 밟으면서 냈던 통행료를 만회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게임 초반, 빈 땅을 사기에 급급해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무인도가 가고 싶어진 때를 생각해봤다. 정신없이 땅을 사들였던 것이 마치 쉼 없이 달려온 내 삶을 보는 듯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이유야 뭐가 되었든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가 되어서야 숨을 돌릴 시간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 대학생활이 끝난다면 정말 허무하지 않을까.’ 게임을 즐기다가 문득 가고 싶어진 부루마블 속 무인도. 삶의 굴레를 몇 바퀴를 돌다보니 실제로도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 가고 싶어 졌다. 사실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5년 전, 친한 형과 함께 무인도 생활이 궁금해 무작정 한국에 있는 무인도에 갔던 적이 있었다. 일단 차를 빌려 무작정 서해의 어촌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새벽에 출항하는 어부아저씨께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 데려다 달라고 하고 나올 시간을 약속했다. 생수 한 병과, 텐트, 버너세트가 전부인 우리에게 ‘물도 부족하고 바람도 많이 불어 추울 거야’라고 하셨지만 우린 무서울 게 없었다. 도착하고 보니 ‘실망’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상상은 처참히 무너졌다. 푸른 바닷물과 모래사장, 야자수와 코코넛, 나무가 우거진 숲 대신 탁한 뻘물과 자갈, 바위가 전부였다. 결국 비상용으로 들고 간 라면을 끓였고 추워서 불을 피웠다가 해경에 의해 쫓겨나다시피 섬을 나와야 했다. 무인도도 주인이 있고, 섬의 나무를 베면 산림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무인도 찾아 몇 날 며칠을 헤매다 이번엔 나의 상상에 부합하면서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무인도에 가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창을 켰다. 국내외 사이트를 넘나들며 이틀에 걸친 검색 끝에 필리핀 중에서도 팔라완 섬의 무인도들이 상상했던 무인도와 가장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다시 검색과 수소문 끝에 팔라완 인근 섬들을 알고 있다는 한국인과 연결돼 현지 섬 주인을 소개받기로 했다. 여기까지도 며칠을 밤새 자료를 찾고, 얼마나 많은 사람과 연락했는지 모른다. 필리핀에만 7천여 개의 섬이 있고 모두 주인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필리핀 섬 주인들은 권총까지 차고 다닌단다. 섬에 몰래 들어와 나무를 베어 가거나 코코넛을 따가고, 불법으로 점령하여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외부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와 섬을 훼손하다보니 섬 주인들은 실탄이 든 권총을 들고 다닌다. 운 좋게 주인의 허락 없이 몰래 섬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나올 때도 문제다. 우리의 어촌처럼 배를 가지고 있는 현지인들끼리 모두 알고 지내기 때문에 누군가가 데리러 가지 말라고 하면 꼼짝없이 섬에 갇혀 있어야 한다. 섬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섬을 지키는 가이드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니 ‘무작정 무인도에 가겠다고 했으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한국에서 무인도에 몰래 들어갔던 경험이 없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모하지만 안전한 계획과 실행 이번 무인도행은 친동생과 함께 하기로 했다. 원래 우리는 팔라완 현지에서 중고 카약을 사서 무인도에 들어가려 했다. 당시 필리핀 마닐라에 있던 동생이 실제로 중고 사이트나 장터에서 카약을 알아보았다. 나는 없는 게 없다는 이베이(Ebay)에서 저렴한 카약을 알아보고 장바구니에까지 담아둔 상태였다. 장바구니엔 이미 영화 ‘캐스트 어웨이’ 주인공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지금은 캐릭터가 된 배구공 윌슨과 카약이 담겨져 있었다. 구글 지도로 봤을 때에는 분명 섬과 섬 사이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축척을 따져보아도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라 판단해 카약을 떠올렸다. 군도 일대는 모두 무인도여서 카약을 타고 이 섬에서 저 섬을 넘나들며 여행도 하고 고기도 잡고 오려고 했다. 그리고 왠지 사진으로 본 팔라완의 바다는 파도가 없을 것 같아 위험하리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팔라완 해변에 도착하고서야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 수 있었다. 현지 상황을 보고 주문한 카약을 배송받아야지 생각했는데 섬과 섬 사이의 엄청난 거리와 적지 않게 출렁이는 파도를 보고 바로 생각을 접었다. 모험도 모험이고, 도전도 도전이지만 나는 늘 안전이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놀랄만한 도전을 한다. 우리는 그 결과만을 보고 대단하다고 한다.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하는 강의를 보면 ‘할 수 있다’고 ‘가면 된다’고 말하지만 어떤 위험이 있고 어떻게 준비를 했는지는 잘 말해주지 않아 늘 아쉬웠다. ‘여행을 가라고 해서 갔는데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의 책임인가?’ 위험하진 않은지,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할지 충분히 생각을 했을 텐데도 우린 그 내막은 전혀 모르고 단지 다녀왔다는 결과만 봤던 것 같다. 내가 사막을 달리며 최연소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난 사막을 250km 달리다가 다치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포기한다면 사막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후속조치를 받을 수 있는지를 따졌다. 터키까지 육로와 해상 실크로드 횡단을 했을 때에도, 히말라야에 오르고 남미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에도 항상 첫 번째로 생각했던 것이 안전이었다. 도착, 고독과 만나는 시간 이번에도 그랬다. 우린 현지 상황을 잘 알면서, 섬에 우리를 데려다 줄 수 있는 작은 배를 가진 친구와 동행하기로 했다. 이 친구는 섬을 지키는 가이드이기도 해서 누구보다 주변 섬들에 대해 잘 아는 친구였다. 날씨나 해류에 대해서도 잘 알아 많은 조언을 듣기도 했다. 섬에서 어떤 위급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잡은 물고기나 숲에 있는 과일이 독이 있는지 우린 알 수도 없다. 방송처럼 몇 십 명의 스텝과 함께 가지는 못하지만 최소한의 준비는 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무인도를 100%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간 현지인 친구에겐 도움을 청할 때에만 조언을 주기로 했다. 이렇게 현지에 도착한지 이틀 만에 무인도 생존팀이 꾸려졌다. 바다색은 시시각각 변했다. 잔잔할 때의 물색이 있는가하면 바람이 불 때, 배가 지나가며 물 깊숙한 곳에서 소용돌이가 일으킬 때의 색이 달랐다. 파도가 조금 전까지 우리가 있던 곳을 삼킬 때의 물색과 먼 바다의 색이 달랐으며 색색의 산호에 비쳐 다양한 빛을 내기도 했다. 균형을 잡기 위해 양쪽에 지지대가 있는 배에 올라 40분, 우리가 가려고 했던 무인도가 나타났다. 이것저것 알아본다고 휴대폰의 데이터를 썼는데 이젠 이마저도 쓸 수 없다. 파도가 칠 때면 혼자 착각하고 휴대폰 진동이라 생각하곤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도 없다. 세상과의 단절이다. 섬에 도착하니 백사장이 반긴다. 흔히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커다랗게 SOS를 적어 두는 해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조명탄을 쏘지만 그냥 지나치는 비행기가 그려지는 그런 곳에서 벌러덩 누웠다. 문득 고요가 찾아왔다. 가끔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는데 비슷한 이치인 것 같았다. 사막을 달리며 길을 잃었을 때의 고요가 진공상태의 두려움이라면, 이곳의 고요는 현실적인 고독이었다. 옆에 사람도 있고, 파도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것도 없다. 무인도를 배경으로 쓴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처럼 외딴 건물도, 무서운 전설도 없기에 더욱 현실적이었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