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DOOR NEWS 네이버 캐스트] 무인도의 낭만 : 윤승철의 무인도 체류기 VOL.32015.09.01. 글·사진 / 윤승철 무인도에 도착해 불을 피우고 물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았다. 꼬박 사흘이 걸려 집을 지었더니 이제야 조금 사람 사는 곳 같았다. 힘든 점이 많은 무인도였다. 예상치도 못했던 현실적 어려움을 와 보니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인도에 생각지도 못했던 낭만도 있었다. 되돌아온 편지 하루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만들고 있던 집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할 정도로 불어닥쳤다. 거친 파도와 비바람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큰 나무 아래에서 몸을 피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다 더 강해진 빗줄기는 텐트마저 날려 보낼 기세여서 텐트에 들어가 몸으로 누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퍼붓는 비를 보니 문득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싶어졌다. 떠내려온 와인병에 매일 편지를 써서 바다에 띄우는 것. 일기처럼 날짜와 날씨를 적고 그 날의 감정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엔 집 주소와 메일주소까지. 이렇게 매일 편지를 띄우다 보면 누군가가 언젠가는 보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 운이 좋으면 내가 살고있는 동해바다 앞까지 떠내려갈 수도 있지 않을까. 혹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무인도의 한 젊은이를 구하러 오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라면 궁금해서라도 와봤을 거다. 코르크 마개를 닫아, 스크류 마개를 닫아, 플라스틱 뚜껑을 닫아 그날 이후로 하나씩 떠내려 보내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해변에 누군가가 답장을 한 듯이 병이 하나 떠내려온적도 있었다. 누군가에게서 온 답장은 나의 기대였고, 내가 띄웠던 병이 파도에 휩쓸려 다시 내게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묘한 기분이었다. 나의 하루가 과거가 되어 돌아온 것. 내게 쓴 편지를 너무 일찍 받은 셈이었다. 그 편지를 어찌할까 고민하다 다시 띄워 보냈다. 자연의 소리, 무인도의 맛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파도소리에 맞추어 불길이 춤을 추듯 타오르는 것. 자연의 음계가 있는 듯했다. 파도 소리는 또 어떤가. 일정하게 울렁이는 파도는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일정하게 덜컹거리는 침대칸 기차에서 잠이 더 잘 오고 반복되는 멜로디의 자장가에 아기들이 더 잠을 잘 자듯 파도는 그런 존재였다. 새벽이면 모래에서 나와 백사장을 기어 다니는 게들이 발을 놀리는 소리와 지붕으로 덮은 야자수잎 사이로 바람이 지날 때 들리는 소리도 있다. 대낮의 쨍한 태양이 때때로 이 모든 소리를 덮어주기도 했다. 별이 뜨는 밤이면 섬의 소리들이 모여 올라가 별이 됐다. 이런 때에 장작불을 전등 삼아 책을 한 권 읽는다면. 세상천지에 이런 평화로운 도서관이 또 있을까. 무인도는 맛있는 곳이다. 신선한 먹을거리가 많다. 물고기들은 당연하고 소라와 조개, 해삼, 전복, 미역처럼 생긴 해초류도 많다. 육지엔 코코넛이 있고 잭푸룻이란 과일은 열매에 씨까지 삶아 먹을 수 있다. 물이 차오르는 만조 시간대면 육지 근처까지 올라와 바위틈에 숨어 있는 랍스타를 만날 수도 있다. 살아있는 녀석들을 바로 잡아 회로 먹는 맛이란! 부드러운 속살이 입안을 감싸면 눈이 절로 감긴다. 물고기들은 또 어떤가. 내장을 손질해서 먹지도 않는다. 갓 잡은 것들을 바로 먹기 때문에 내장 때문에 상할 일도 없다. 예민해 회로 먹기 힘들다는 생선들도 싱싱한 속살을 드러내는 곳이 무인도다. 잡았다가 놓쳤던 문어가 생각났다. 라면에 넣어 먹었다면 얼마나 맛있었을까. 손질을 못 해 보내버린 수없이 마주친 복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물 눈이 어두워 수중에서 그냥 지나쳐버린 전복이며 해삼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무인도, 나만의 세계 무인도에서의 일주일이 지났다. 차차 적응되면서 외로움도 덜해졌다. 이쯤 되면 ‘윌슨’ 같은 친구도 한 명 생기고 으레 혼잣말도 하게 된다. 파도에게도 말을 걸고 야자수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물에서 물고기들의 이야기도 듣게 된다. 밤에 별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이고 오래도록 셔터를 누를 때도 있었다. 이럴 때면 노래를 부르거나 고민을 혼자 이야기한다. 어두워서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주기적으로 화면을 보고 셔터를 눌러 주어야 하니 어디 멀리 가지도 못한다. 카메라를 건드려서는 안 되니 소리라도 내게 된다. 다른 것들을 하지 못하니 소심하게 중얼중얼 소리를 내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피아노 한 대를 들여놓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치지는 못하지만 배우고 싶은 곡은 있다. 띵똥띵똥 마음대로 치면서 새벽 내내 연습할 수 있겠다. 혼자 섬에 있어서 누구의 눈치를 볼 일도 없다. 귀찮으면 사냥을 가지 않고 오래도록 누워 있을 수도 있다. 불을 피우기 위해 잔가지들을 모아 왔지만, 굳이 한 곳에 가지런히 모아두지 않아도 무어라 할 사람이 없다. 책 한 페이지를 읽고 해변을 거닐어도 된다. 온종일 물에서 놀아도 조급함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바쁘게 지내며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삶을 부러워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섬 전체를 빌렸다는 생각에 억지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욕심마저 없어지는 3주차에는 홀딱 벗고 섬을 누볐다. 미개한 짓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었다.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동물적인 삶을 꿈꾸기 마련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라면 인간은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 최대한 자신의 모습을 어필한다고 한다. 남성은 신체적으로 이를 드러내고 싶어 한단다. 좋은 몸은 아니지만 그래도 섬의 일부가 되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무인도를 나오며 지난 2월에 무인도에 다녀온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무인도에서의 다양한 활동들과 활용방안을 고민하는 무인도 테마 연구소를 만들었다. 무인도에서 생존해보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이카루스 원정대’란 이름으로 생존 팀도 꾸려서 틈틈이 함께 무인도에 들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섬을 꿈꾸고 있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중에 한순간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고,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 혼자 조용히 나의 약점들을 보완하고 싶은 시간이나 듣고 싶은 음악을 밤새 크게 틀어놓고 싶은 시간. 때론 거친 자연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싶기도 하고 원시의 혹은 야생을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캠핑을 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늦은 밤, 조용히 혼자 와서 텐트를 치는 사람. 조용히 라면 하나를 휴대용 삼발이 가스에 끓여 먹고 의자에 앉아 별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 그냥 누워서 맑은 공기만 마시다가 이른 새벽이면 홀연히 사라지는 이들을 수없이 봤다. 어느 겨울, 국립공원의 이름난 산장에선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와 눈만 보고 가는 사람도 봤다. 입김을 내며 커피를 마시는 한 할아버지가 펼친 지도엔 정상으로 가는 길 대신 산 전체를 둘러둘러 가는 길을 빨간 볼펜으로 그려둔 것도 보았다. 정상엔 가지 않지만, 최대한 많이 걸을 수 있는 길을 표시해둔 것이었다. 나를 무인도로 데려다준 현지 뱃사람이 생각하는 무인도. 내가 옆 무인도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불빛 하나 없이 코코넛으로 담근 술을 들고 노를 저어 왔던 이웃 할아버지의 무인도. 서울이라는 곳에 살면서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던 도심 청년의 무인도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일상인 것이 내게는 환상이자 낭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그들이 본다면 어쩌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이란 존재에 눈이 있어 이 글들을 내려다본다면 뭘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빨간 펜을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는 자연에 대해, 나에 대해, 섬에 사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고 본질에 도전하며 부딪치는 시간이었다. 적어도 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 오히려 파도가 잔잔했다. 폭우가 내리는 날 만들어둔 뗏목을 띄워 섬을 탈출해보려 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던 적이 있다. 그때 섬을 탈출하지 못한 게 잘 된 일이다. 사람들마다 가슴엔 섬이 있어 섬을 쫓는다. 왠지 모두들 그 섬에서 만날 것 같다. 너무 무서워도, 너무 외로워도, 일이 너무 잘 풀려도 찾게 되는 그런 혼자만의 무인도에서 말이다. 원문보기